작성자: 고디남녀집사
기간: 2012년 4월27부터 5월 11일까지
장소: 중앙아시아 키르키즈스탄 공화국
독수리 제자훈련학교에서의 선교여행은 내게 주어진 두 주 동안에 내가 열방을 바꾸고 원수를 대적하며 미전도 종족을 뒤집어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도하겠다 열정과 선교사의 신분으로 떠나는 선교여행이 아니고, 학생신분으로 선교 대상국에 가서 계속 훈련을 받는 것입니다.
키르키즈스탄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고 출발했으나, 비행기에 이상이 발생하여 두 시간 후에 씨아틀에 다시 돌아왔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선교준비에 분주한 마음을 내려놓고 기도로 준비하고 가기를 원하셨던 것 같습니다.
집을 떠나 60여 시간 만에 키르키즈스탄에 도착, 수도인 ‘비쉬퀵’에 있는 은혜교회 부속 건물에 우리의 숙소가 정해졌고, 우리의 도착을 하나님께 올려 드린 후 우리의 키르키즈스탄의 생활이 시작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보다 먼저 우리 팀원들이 하나가 되는 것이며, 우리들의 성격의 모난 부분들이 다듬어지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고 그 땅을 축복하고 그 땅을 밞으며 그 땅의 영혼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길, 또 그 땅이 축복의 통로가 되기를 중보하는 중보자 역할이었습니다.
그 곳에 정말 아름다운 임마누엘교회가 있고, 하늘을 우러러 높이 서 있는 종탑 이 있었습니다. 이슬람권이며 아직은 미전도종족이라고 알았던 이 땅에 예수님의 고난과 구원을 상징하는 십자가가 우뚝 서있는 모습을 봤을 땐 너무 감사하고 감격 했습니다.
하나님은 22년전에 김성민목사님을 이곳에 보내셨습니다. 김목사님은 복음증거와 제자훈련을 통하여 현지인 목사님을 양육하시고 현지인 목사님께 교회를 맡기신 후, 미국으로 돌아와 L.A, 근교에서 교회사역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복음이 있는 곳이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고 생가하고 키르키즈스탄으로 돌아가셔서 지금은 다른 분들을 돕고 계시고, 그 교회는 지금 키르키즈스탄과 주위의 다른 나라까지 선교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 교회의 자랑은 모든 교인이 솔선수범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핍박이 심해도 주위에 교회가 몇 군데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키르키즈스탄 사람들은 혼란 속에 살고 있으며, 학교공부에는 의욕이 없고, 돈이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나라, 심지어 의사 자격증까지도 인맥과 돈이면 해결되고, 소련으로부터 독립이 된 후엔 그들은 무었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소련 지배를 받을 때를 예를 든다면, 냉장고 하나를 만들 때 실수하여 잘못 나온 냉장고를 다시 고쳐 쓰지 않고 만든 사람을 총살했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자동차 엔진은 위그르에서 만들고, 몸통은 키르키즈스탄에서 만들고, 타이어는 소련에서 만들었기 때문에 그들에겐 아무 기술이 없다 보니, 있던 공장은 무용지물이 되고 공장을 책임지고 있던 사람이 공장 물건들을 고철로 팔아 없어지고 지금은 빈 빌딩만 있다고 합니다. 소련 지배하에 있을 때엔 나누어 주는 배급으로 살던 때처럼 의욕도 기술도 없답니다. 아직도 모슬렘권이기에 자유롭게 복음을 전할 수 없는 땅, 선교사님들도 지쳐 계시고 우리가 와 주어서 자신들도 재충전이 되었다고 기뻐하는 모습에 눈물이 났습니다. 우리는 ‘까라콜’이라는 다른 지방으로 이동했고, 이곳에서 우리가 해야 할 사역은 중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한국 문화 체험 사역이었습니다. 그 곳에서 사역하시는 박선교사님이 학교에서 클럽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돕는, 돌을 고르고 길을 만드는 작업이지요. 그래서 학생들을 자유롭게 만나며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이 일을 통해 박선교사님이 학교에서 클럽활동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리도록 기도 부탁 드립니다. 그 곳에서 만난 중고등학생들, 예수님이 사랑하는 그 영혼들이 주님을 만나기를 기도해 주십시오. 그 영혼들이 예수님을 만날 수 있도록 껴안고 기도하고 “예수님이 사랑해요”라고 한국말로 전했습니다. 우리는 한복으로 곱게 차려입고 김밥 만들기, 태극기 그리기, 제기차기, 한글 배우기, 투호 던지기, 풍선 만들기 등 으로 이틀 동안 사역하면서 그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아르뜨르 목사님(고려인)께서 사역하시는 교회에서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분들께는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옛날 한국 60년경 보다도 더 못사는 나라인 것 같은데, 아프리카를 걱정하며 먹을 것이 없어 6초에 한사람씩 죽어 가는데 우리는 많은 것을 가졌기에 감사하다는 목사님을 보며 정말 마음이 아팠습니다. 또 성찬식 전에 회개기도 시간에 목 놓아 우시는 모습 속에서 순수함을 보았고, 모든 성도님들도 눈물로 회개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느꼈습니다. 예배 후엔 1년에 한번 정도나 해 먹을 수 있은 기름밥과 셀러드 과일로 만찬이 벌어졌고, 옛날에 말로만 들었던, 소련에서 고려인들을 기차에 태워 만주나 카작스탄에 버렸다는 이야기속의 살아있는 주인공 할머니도 만났습니다. 이북말씨를 쓰시는 데 그래도 알아들을 정도. 그 할머니의 외손자가 바로 아르뜨르 고려인 목사님입니다.
그 후에 3시간정도 떨어진 ‘이스쿨’이라는 지역에서 DTS 훈련에 참석중인 현지인들을 만나 교제를 나누었고, 수도인 ‘비쉬퀙’에 돌아와서 여성사역을 포함한 이런 저런 사역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나 자신이 변해 내 생활속에서 주님의 향기가 되고 편지가 되길 원하고 계심을 알았습니다. 모난 나를 다듬으시고 계신 줄로 압니다. 언약궤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 그 곳이 지성소였듯이, 지금은 내 마음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으므로 내가 지성소라는 것도 배웠습니다. 지성소가 놓인 곳이 거룩한 땅인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가 밞는 땅도 거룩하게 되기를 소망하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으로 어느 곳을 가든지 그 땅과 그 나라가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기도하는 한사람의 중보자가 되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p.s. : ‘비쉬퀵’에서 젖유종을 앓던 한 산모를 위해 아홉 명의 여성팀이 기도했는데 기도한 다음날부터 아기에게 젖을 먹였다는 소식을 나중에 돌아와서 듣고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